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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stitute of Ocean Science & Technology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신념으로 쏘아올린 Ocean Dream!

  • 조회 : 12030
  • 등록일 : 2018-05-31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신념으로 쏘아올린 Ocean Dream!

운용해양예보연구센터 심재설 책임연구원

운용해양예보연구센터 심재설 책임연구원

사진 1. KIOST 운용해양예보연구센터 심재설 책임연구원

구운밤에서 싹이 자란다고 말하면 미련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만이 구운밤에서 싹이 자라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현실로 옮겨놓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KIOST 운용해양예보연구센터 심재설 책임연구원(이하 심재설 박사)은 ‘우공이산(愚公移山)’ 네 글자를 빌려 스스로를 미련한 사람이라고 낮춰 소개한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믿고, 현실로 옮겨 온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당진에서 태어난 소년
갯벌의 생명력에 호기심을 품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이지만 처음 바다를 본 것은 할머니를 따라 망태기를 들고 게를 잡으러 나간 7살 무렵이라고 한다. 집에서 8km나 떨어진 당진의 갯벌은 소년이 두 발로 걸어가기에는 꽤나 먼 길이었기 때문이다. 동해와 서해, 남해의 차이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갯골로 물이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미세한 숨구멍들이 열리고 닫혔고, 칠게, 농게, 청게가 올라왔다. 수평선 너머는 미지의 세상이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밀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고 그는 말한다.

 

“그믐이면 어른들을 따라 갯벌에 갔어요. 물이 많이 빠져나가야 게를 오래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똑같이 물이 많이 빠지는 보름에 잡는 게는 속이 비어서 먹을 게 없데요. 야행성인 게들이 밝은 달빛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해서 속살이 빈 것이지요. 지금은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당시에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게를 잡는 것까지도 모든 게 호기심이었어요. 물고기를 잡고 놀던 냇가나 저수지는 항상 같은 모습인데, 바다는 시시각각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매 순간순간이 다르게 다가오니까요. 어른들에게 물어봤는데, 이유를 모르더군요. 그들도 대대로 축적된 경험을 이어가는 것뿐이었죠.”
초등학교 시절에만 세 번의 전학
어머니의 이해와 배려로 학업에 전념

바다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학자로서의 궁금증을 키워나가기 시작하던 그였지만, 4형제의 둘째였던 탓에 소년으로만 남을 수는 없었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전근을 가면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만 당진에 남겨 둔 것이다. 아마도 작은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면서 타지에 있는 가족을 도우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고 그는 그때를 돌아봤다. 가족과 떨어진 채로 당진에서 2년을 보내고 4학년이 되어서야 그를 데리러 온 어머니를 따라 대전으로 갔다. 농사를 도우며 밭에서 오이와 가지를 따먹던 그에게 여섯 식구와 단칸방에서 살을 부비는 대전은 퍽이나 낯선 곳이었다고. 새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 적응할 틈도 없이 치른 시험 성적표를 보고, 그의 아버지는 운동을 권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또 다시 전학을 갔지만, 그는 당시만 해도 강압적인 운동부의 규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그의 두 눈을 알아본 사람은 삯바느질로 생계를 돕던 어머니였다. 마침내 공부를 해보라는 허락을 얻어냈고 세 번째 전학을 가게 됐다. 맹자가 세 차례나 집을 옮겨 학업의 길을 닦았듯 그는 세 번의 전학을 거쳐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다.

군복무 중, 영천 3사관학교 교량 설계
자신의 배움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하다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현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그는 26살의 늦은 나이에 입대를 했다. 그를 백면서생으로 여긴 선임들은 부모를 잘 만나 대학원을 다니다 왔다고 시기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장교들은 그를 눈여겨보았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영천 3사관학교에 건설할 교량 설계를 그에게 맡긴 것이다. 그가 시공을 목적으로 제작하는 첫 설계도면이었다. 처음이라는 부담감은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되어 스멀스멀 밀려왔으나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시간마저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주어진 임무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설계한 도면을 들고 영남대학교로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는 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는데 영남대 교수에게 그때 들은 말 한 마디가 천근추가 되어 그의 가슴을 울렸다. “자네, 올바르게 공부했군. 똑똑히 했어.” 재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정확한 설계였다. 이대로 시공해도 되냐고 묻자 “그렇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 한 곳에 자리했던 걱정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도 그 날카로움은 잃지 않는 법이다. 전역 후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교수의 권유로 KIOST의 전신인 한국해양연구소 환경공학실에 입사했다. 그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될 KIOST와의 만남이자, 바다와 재회하는 기쁨의 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냥갑 크기의 계획이 212억 원의 프로젝트로 탈바꿈
맹장이 터진 줄도 모르고 대한민국을 가로질러

해저지반의 공학적 파악은 경제적이고 안전한 구조물 설계를 위한 필수 요소이다. 해역의 특성은 물론 국지적인 바람과 파도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해양연구소에는 토목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므로, 그가 그린 청사진은 곳곳에서 바다를 이해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였던 바다는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새로운 소식을 안고 돌아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에게도 첫손에 꼽고 싶은 자식이 하나 있다. 1995년에 시작해서 2003년에 완공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이다. 이어도는 연간 수십만 척의 선박이 통항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자 매년 태풍이 지나는 만큼 관측 중요성이 높은 해역이지만, 1991년에 해운항만청이 설치한 항로표지용 등부표만이 떠 있어 지리적 중요성에 비해 소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에 수십억 원 규모의 해양관측탑 건설 계획이 논의됐고, 이후 대형 해양구조물로서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확대되었다. 망망대해에서 수심 41m에 있는 암초를 거점으로 구조물을 완공하는 일은 노력과 열정만 가지고 성공을 담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아끼는 선배들의 애정 어린 만류를 뒤로 하고, 그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의 최전선을 부단히 뛰어다녔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2년 동안 과학의 힘으로 바다를 극복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직감이었다.

  • 사진 2. 심재설 박사가 설계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항공사진
  • 사진 3.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완공 기념 헌정부채 액자

 

사진 2. 심재설 박사가 설계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항공사진
사진 3.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완공 기념 헌정부채 액자

  • 사진 4.5.6,7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 사진 4.5.6,7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 사진 4.5.6,7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 사진 4.5.6,7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사진 4.5.6,7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하루는 울산에서 현장 직원들과 저녁을 먹는데, 배가 아파서 음식을 삼키지 못했어요. 직원들이 차를 태워줘서 울산에서 동대구까지 오고, 다시 야간열차를 탔죠.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곧 나을 거라는 말만 했어요. 의사의 말을 믿고 이틀을 더 참았습니다. 참을수록 몸 상태는 안 좋아졌죠. 큰 병원에 갔더니 내 배를 만져보고는 복막염이라고 하더군요. 맹장이 터진 줄도 모르고 대한민국을 가로지른 거죠.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제게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마취약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안 돼!’라고 외쳤답니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고. 이어도에 기지를 완성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수술을 하러 들어가면서도 머릿속에는 이어도 생각만 가득했던 거죠.”
해양의 주권 경쟁 속에서 자부심을 지키다

오늘날 육지에서 300㎞ 떨어진 곳에 종합해양과학기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태풍권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어도 기지를 통해 풍량과 바람을 관측해 태풍을 예측하고 최근 이슈가 된 미세먼지의 유입 경로도 파악했다. 또한 세계 주요 학술지에 ‘이어도’를 표기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진가를 발휘함은 물론,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는 계기를 마련하며 우리의 영토주권을 수호하는 조력자가 되었다. 심재설 박사의 열정이 바다를 경계로 한 국제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바다를 향한 우리의 도약을 지켜본 주변국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중국은 해양굴기(海洋?起)를 선언하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심재설 박사를 찾아왔다. 해양과학기지 건설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는 프로젝트를 맡기면 책임지고 완공시켜 주겠다고 했으나, 중국의 제안은 달랐다. 연가를 내고 1년 동안 중국에 와 달라는 것이었다.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우리의 기술을 통째로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연구가 많아서 중국에 갈 수 없다고 좋은 말로 거절했다.

과학은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존재 한다

한국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에서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의 선택은 확고했다. 종합해양과학기지의 건설 기술이 그의 것만은 아닌 까닭이다. 해양과학분야의 선진국인 노르웨이가 기지의 해양관측/통신시스템을 아무런 대가없이 제공하겠다고 했을 때도 국산화로 방향을 정한 해양과학기지였다. 그래서 선진 해양강국의 기술속국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귀중한 외화낭비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그를 강력하게 필요로 했다. 그는 이어도 기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반도 서남해안 관측을 책임지는 ‘가거초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을 진두지휘했고, 최근엔 백령도 부근에 ‘소청초종합해양과학기지’를 세웠다. 이에 종합해양과학기지 구축 및 활용연구의 책임자로 태풍의 실시간 관측정보를 기상청에 제공하는 등 해양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적 대응기반을 마련했으며, 국내의 연안침식을 최소화하고 국토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대응기술 개발의 총괄 연구단장으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2016년에는 <제10회 장보고 대상> 대통령상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 사진 7. 심재설 박사가 근무하는 KIOST 부산 본원 4연구동
  • 사진 8. 운용해양예보연구센터 회의 모습
  • 사진 9. KIOST에서의 연구 성과를 담은 저서
  • 사진 10. 2016년 <제10회 장보고 대상> 대통령 상장

사진 7. 심재설 박사가 근무하는 KIOST 부산 본원 4연구동
사진 8. 운용해양예보연구센터 회의 모습사진
9. KIOST에서의 연구 성과를 담은 저서사진 10. 2016년 <제10회 장보고 대상> 대통령 상장

“장보고 대상은 해양연구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라고 생각해요. 이 상을 노벨상으로 가슴깊이 생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상이 큰 만큼 책임의식을 느끼며 학자로서 할 일을 겸손히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마지막으로 받는 상이구나’라고 느꼈죠. 33년 동안 연구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가슴에 품고 있는 신념이 하나 있어요. ‘과학은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과학자가 사명과 애국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린애가 칼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국가와 국민에게 동그라미 하나를 더 붙여 되돌려 준다는 자세로 기여해야 합니다.”
학자로서의 버킷리스트,
우리 과학기술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독도 해양과학기지 설계

이렇게 한 평생을 연구자로서 후회 없는 열정을 바친 심재설 박사지만 아직도 남은 도전을 위해 여전히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그가 회장을 맡은 한국연안방재학회(KSCDP)와 KIOST가 공동 주관하는 준비 때문이다. 부산에서 개최되는 이번 심포지엄은 기후 문제로 해수면이 올라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0개국에서 500여 명의 연안연구 학자들이 아시아에 모이는 최초의 자리로서, 『JCR(Journal of Coastal Research) 특별호』에는 300편의 논문이 수록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수중 전망대와 수중공원 같은 다목적 관광 상품과 유보된 독도의 해양과학기지 설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해양기지에서 기상관측, 해양생물, 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관측 데이터를 얻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후학들이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논문을 기고해 우리의 연구 성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바람이다.

  • 사진 12.13. 심재설 박사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그의 좌우명(우공이산)과 소청초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현장 액자
  • 사진 12.13. 심재설 박사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그의 좌우명(우공이산)과 소청초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현장 액자

사진 12.13. 심재설 박사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그의 좌우명(우공이산)과 소청초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현장 액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본원을 옮기면서 저도 부산 시민이 됐어요. 무엇보다도 공기가 맑아 코가 행복한 동네에서 살게 되어 좋습니다. 다만, 기술원 부지가 넓다보니 아무래도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네요. 점심을 먹고 산책로에서 만난 사람들과 반가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행복한 요즘입니다.”


거미가 집을 지으려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더듬어야 한다. 한 발은 현실을 굳게 딛고, 다른 한 발은 미래로 간단없이 치솟을 때 집이 지어진다. 그가 과학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걸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심재설 박사에게 과학은 인류의 걸음인 동시에 종료시킬 수 없는 연구이고, 저지할 수 없는 역사이다. 감성적인 회고가 아니라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용감하게 전진하는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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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