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평양 공해에 KIOST 명칭의 랜드마크를 건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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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8-11-29
서태평양 공해에 KIOST 명칭의 랜드마크를 건설하다
KIOST 해양기기개발·운영센터 박요섭 책임기술원
국어대사전은 ‘해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바다의 상태를 자세히 적어 넣은 항해용 지도’. 바다 속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각종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KIOST 해양기기개발·운영센터 박요섭 책임기술원(이하 박사)은 이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해줄만한 사람이다. 제31차 해저지명 소위원회 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등재된 키오스트 해산(KIOST Sea Mount)이 그의 손을 거쳤으며, 함몰구조가 백록담을 닮은 키오스트 칼데라(KIOST Caldera)와 인도양 수심 4,000m에서 발견한 히말라야 산맥의 저탁류 흔적도 그의 연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자연과학 분야의 전공자가 주를 이루는 KIOST에서 이례적으로 자동화공학을 전공하고,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해저 지형의 비밀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흠뻑 매료된 반전 이력의 소유자다.
공장 자동화를 꿈꾸던 자동화공학도에서
국가의 해양조사 R&D를 담당하는 벤처 회사 창립
그 역시 학부 시절에는 대학의 여느 선배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해 공장 자동화를 책임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이 뜻하지 않은 기연을 만나 삶을 송두리 채 바꾸듯, 삶의 변곡점이 박요섭 박사를 찾아온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평소에도 그를 눈여겨 본 연구실의 지도교수가 기기 분야에서 더 넓은 경험을 쌓기를 바라며, 지인을 통해 KIOST(당시 해양연구원)에서 수행 중인 연구 과제에 그를 참여시킨 것이다. 세계 대양을 연구하며 해양과학 발전에 공헌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온누리호가 취항한 첫 해였다. 목적지는 독도의 인근 바다였는데, 당시 온누리호에는 수심자료를 측정하는 기기인 SEABEAM을 제어하기 위해 VAX라는 중형 컴퓨터가 탑재되어 있었다. 286, 386 컴퓨터만 구비되어 있는 학교를 벗어나 첨단 인프라를 목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박요섭 박사는 지도교수의 뜻을 이해하고 온누리호에 탑승했다. 하지만 온누리호는 첨단 장비보다 더 큰 꿈을 그에게 선물했다. 온누리호의 바닷길이 무궁무진한 해양 생물과 원시적 자연을 그대로 따라갔는데, 배에 승선하지 않았다면 평생 보지 못했을 기막힌 장관이었다. 항해가 끝나고 학교로 복귀하자마자 그는 대학과 해양연구원을 오가며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이후 바다를 더 깊이 연구해보자는 일념으로 측량 등 해양조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벤처회사를 창립했다. 10년 동안 국가 R&D의 위탁과제를 통해 유수의 대기업을 파트너로 맞아 용역 사업을 도맡으며 회사의 역량을 키워 간 시기였다.
사진 1. KIOST 해양기기개발·운영센터 박요섭 책임기술원
남태평양 응용지구과학위원회(SOPAC) 파견
외국 연구원과 교류하며 국제 표준 확인
창업한 회사는 이제 막 사업의 범위를 확장하며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라 이를 그만두기가 결코 쉽진 않았으나, 그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그가 파견을 나간 남태평양 응용지구과학위원회(South Pacific Applied Geoscience Commission, SOPAC)는 국가 관할권의 자원관리와 각종 조사연구를 관리하는 국제기구였다. 일반적으로 태평양의 배타적 경제수역은 사실상 빈틈이 없다고 하는데, ‘푸른 대양(blue ocean)’이지만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섬들이 많아 정치·경제학적으로는 ‘레드 오션(Red ocean)’에 가깝기 때문이다. 수심 측량에는 잔뼈가 굵은 박요섭 박사도 동 연구가 국가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다. 국내에서만 활동하던 그에게 외국의 연구원들 및 피지, 키리바시, 사모아 등 섬나라의 원주민들과 교류하며 국제 표준을 익힐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그렇게 1년의 파견 기간이 끝나갈 즈음 박요섭 박사에게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심해열수공 탐사를 목적으로 피지에 입항한 KIOST 심해저광물자원연구팀이었다. 그가 바다를 누비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온누리호와도 15년 만의 재회였다. 필요한 물자를 배에 싣는 동안 박요섭 박사는 연구팀의 가이드가 되어 피지를 안내하고, SOPAC의 업무도 소개했다. 연구팀으로부터 파견이 끝나면 함께 연구를 해보자는 말을 들은 것도 그때였다. ‘제가 나이도 많은데 자리가 있을까요?’라고 농담을 놓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가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8년, 박요섭 박사는 해양방위연구센터에서 박사후연수(Post-Doctor) 과정을 밟고 수중 글라이더와 웨이브 글라이더 등 새로운 탐사장비의 기능평가를 전담하였으며, 천암함·세월호 등 국가 주요 해양 재난현장에서 자신의 전문분야인 수중탐색 기술을 지원하게 되었다. 또한 이사부호가 건조될 당시에는 인수위원회 간사로서 이사부호의 모든 부분의 성능 평가를 관리했다.
단 ‘하루’를 위한 땀과 열정의 5개월
장비의 성능 확인을 목표로 최적의 시나리오 도출
박요섭 박사는 이사부호에 탑재되는 각각의 장비가 제원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하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특히 ‘심해용 다중빔 음향측심기(Multibeam Echo Sounder)’는 최대 11,000m의 수심을 측정할 수 있는 첨단장비였지만, 우리나라 주변에는 이를 측정할만한 해역이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를 그리는 기본 장비이므로 타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는 가동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해저산이 많은 괌 동쪽의 공해를 시험평가를 위한 테스트 장소로 결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심해의 해도는 대부분 미완성인데, 이는 해저 지형의 85% 이상이 현대식 장비로 측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요섭 박사가 항로를 잡은 괌 동쪽의 공해 역시 해수면의 중력을 측정해 그 데이터로 대형 해저 봉우리를 관측한 자료들만이 존재했는데, 측정 지점 사이의 거리가 2㎞나 될 정도로 해상도가 낮았다. 하지만 부정확한 만큼 새로운 해산이 발견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는 ‘장비의 성능 테스트’라는 초기의 목적에, ‘서태평양 해산 탐사’라는 계획을 더해 기존의 데이터들을 검토, 수심이 6,000m 이상이면서도 명확한 형상(해저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해역을 조사했다. 연구선을 타고 장비의 성능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뿐, 철저한 준비만이 해결책이었다. 이동 동선 설계와 배의 속도, 장비의 운영 시점 등 장비 성능 테스트를 위한 최적의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데만 약 5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2017년, 마침내 박요섭 박사가 승선한 이사부호는 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벗어나자마자 예상한 위치에서 대규모의 원추형 수중화산을 발견했다.
사진 2. 이사부호에서 탑재 장비 성능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사진 3. ‘심해용 다중빔 음향측심기’를 이용해 수심 10,122m의 지형을 측정하는 모습
그림 1. 서태평양 괌 동쪽의 KIOST Sea Mount
사진 4. KIOST Sea Mount(우), KIOST Caldera(좌) 3D 모형
제31차 해저지명 소위원회(SCUFN)
전 세계에 ‘KIOST Sea Mount’ 등재
놀라움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새롭게 발견한 해저산에서 약 20km 떨어진 해역에서 칼데라(Caldera) 형상의 봉우리도 발견한 것이다. Sea Mount는 기존 데이터를 통해 존재 여부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칼데라는 기존 자료에서 그 어떤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기쁨은 배가 되었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의 연구 성능과 탐사 자료의 분석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것으로, 그는 철저히 준비한 시나리오 덕분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지우고 만선의 기쁨으로 귀항했다. 발견된 해저산은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키오스트 해산(KIOST Sea Mount)’으로 명명됐다. 이어 2018년 10월에는 뉴질랜드에서 열린 ‘제31차 해저지명소위원회(SCUFN)’ 회의를 통해 그 이름을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알렸으며, 취득한 해저지형 자료를 국제기구에 제공 및 향후 구글 어스(Googlr Earth) 등의 인터넷 지도에 ‘키오스트 해산’으로 정식 등재함으로써, 태평양 해역의 랜드마크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또한 올해 12월에는 키오스트 해산과 함께 발견한 ‘키오스트 칼데라(KIOST Caldera)’를 국가지명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렇듯 과학자로서의 커다란 발견, 전 세계에 KIOST의 명칭을 등재했다는 자부심, 어떤 걸 가져다붙여도 그를 설명하는 말이 되었을 것이나, 이런 명성을 뒤로하고 그가 선택한 길은 ‘바닷속 어떤 힘이 지형 변화의 원인이 되었는가’를 알기 위해 지질학과 학부생이 전공 기초 때 배우는 지질학 개론서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림 2. 발견한 해저산과 육상 지형의 유사성 비교
그림 3. 인도양 해저 4,000m에서 발견한 강의 흔적
신설된 해양기기개발·운영센터의 일원으로서
해양 연구의 토대 강화
학자가 자신의 연구 과제를 결정하고, 의견을 발표하고, 동료들과 협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과학은 세상과 인류에 대해 진실을 밝히는 최고의 노력이며, 여기서 도출된 사실은 집단지성을 통한 진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다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으로 그간 드론을 비롯한 무인 장비와 유인잠수정들이 국내 해양과학기술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온 박요섭 박사. 이제 그는 10년 간 몸을 담았던 해양방위연구센터를 떠나 금번 신설된 해양기기개발·운영센터의 일원이 되어 첨단 기기 및 장비를 적시에 제공함으로써 해양 연구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계획안을 도출하고 있다. 대형 연구장비를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공동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여기서 생산된 자료의 품질을 유지하며 글로벌 공유 표준 포맷으로 만들어 학제 간 연구의 토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해양에 대한 자료 취득은 매우 고가의 연구 장비들이 동원되는 빅 사이언스이기에, 보다 수월한 연구를 위해서는 바닷속 어느 공간에서도 탐사가능하고, 샘플을 채취할 수 있는 연구 장비를 갖추어야 하며, 구축된 장비는 원활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운영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소에는 아직 심해 해저면을 가까이에서 탐색하고 샘플을 채취할 수 있는 무인잠수정 혹은 유인잠수정이 갖추어있지 않다. 그는 앞으로 해양기기개발·운영센터에서 무인 잠수정, 유인 잠수정 등 대형 연구 장비를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는 토대를 갖추는 일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 5. 신설된 해양기기개발·운영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파력을 동력으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무인 보트를 설계하는 모습
자기 앞에 놓인 과업의 도전을 매 순간 흥미롭게 받아들여 온 박요섭 박사. 향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파일럿 팀을 만들어 기초과학과 첨단공학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과학적 데이터를 상호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그가 매일, 그리고 한결같이 동료들에게 던질 질문은 명백하다. “May I help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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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
-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