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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stitute of Ocean Science & Technology

KIOST에 266개의 해양 자료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 조회 : 227938
  • 등록일 : 2022-08-01
KIOST에 266개의 해양 자료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 한상복 박사 기증자료 전시회 -


사진 1: 한상복 박사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는 연구원들

사진 1: 한상복 박사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는 연구원들

자료는 쓸모없는 이에게는 한낱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는 보물이 되기도 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몸담았던 한상복 박사가 평생 모은 자료를 기증하였다. 자료 중에는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등 우리나라 해양학 태동기에 해당하는 자료들이 많아, 장기 기록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선행연구 자료를 찾는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원내 연구원들에게 공개되었던 전시회 현장을 담아본다.

기증자 한상복 박사와 KIOST

KIOST의 해양과학도서관에서 한상복 박사의 기증 도서 전시회가 열렸다.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과를 전공한 한상복 박사는 1974년 호주에서 해양물리학 석사, 지구과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KIOST가 해양개발연구소이던 시절 한상복 박사는 원전 지역의 지형연구를 수행했다. 1970년대 원전을 세우기 위한 지형조사를 해양연구소가 맡았다. 해저까지 아우르는 지형조사는 온도의 변화, 물흐름 변화, 온배수 처리 등 물리학 없이는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연구였는데, 연구소 인력 대부분은 자원을 연구하던 이들이었기에 박사를 비롯하여 많지 않은 이들이 핵발전소를 위한 기초 물리 연구를 수행했다. 1976년 월성을 시작으로 고리, 영광, 울진 등 원전 건설을 위한 지형연구는 이러한 환경에서 수행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한상복 박사는 KIOST에 어렵게 모은 자료를 기증하게 되었다. 자신이 연구한 분야를 계속해서 연구해 줄 곳이 KIOST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한상복 박사는, 연구자들의 특징을 꿰고 있다며 연구에 욕심이 있을 후학들이 자신의 자료를 잘 써먹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 한상복 박사가 기증한 연구 자료와 전시회 전경
  • 한상복 박사

사진 2,3 : 한상복 박사가 기증한 연구 자료와 전시회 전경, 그리고 한상복 박사

해양학자의 길을 따라

치과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치과대를 가라는 주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리학도의 길을 선택했다. 어릴 적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으며 “베짱이는 겨울엔 다 죽고 없을 텐데 어떻게 개미와 대화를 할 수 있죠?” 라 묻던 호기심이 아이는 만물의 형태와 변화를 살피는 물상(物象)에 흥미를 느껴 물리학과를 진학했다. 그가 해양물리학의 길로 접어든 때는 ROTC 1기생으로 최전방에서 군 복무를 했던 때였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은 콩으로 유명한 지방이지만, 1963년 당시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낮에 출입하는 것 외에 군인만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었다. 포병이었던 한상복 박사는 밤마다 OP에서 보초를 섰는데, 보병들이 순찰하는 지역은 지형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어 위험했다. 임진강 하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정확한 조석 차를 알아야 하는데, 당시에는 조석 관측은커녕 예보조차 믿을만 하지 않았다. 한상복 박사는 취미 삼아 조석을 관측하여 관련 부대 장교나 지인들에게 조석 차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것이 소문이 나자, 미8군 부사령관은 박사에게 임진강 하구에 대한 브리핑을 요구했다. 그의 가장 큰 궁금증은 북한군이 탱크를 이용해 남쪽으로 진입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상복 박사는 뚜렷한 조석 차이와 하구의 퇴적물을 근거로 탱크 공격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브리핑 후, 미8군 부사령관은 한상복 박사에게 그가 관측하고 있는 것이 해양학이라며 관련된 공부를 권했다. 그리고는 8군 도서관까지 헬리콥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했다. 임진강 하구의 조석 관측을 했던 것이 한상복 박사에게 평생 연구 분야로 이끈 것이다.

집요하게 찾아낸 귀중한 자료

최신 학계 동향 및 연구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외국 자료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한상복 박사가 한창 연구에 매진하던 시기 우리나라는 여행도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논문도 보고 연구 자료도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책 한 권 구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국가 기관들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면 더 발전된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데, 당시 기관들은 연구 내용을 책으로 묶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연구자의 공개 요구에는 자료가 없다고 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따라서 연구를 위한 자료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상복 박사의 자료들은 대부분 직접 외국에서 얻은 것이다. 그중 일본에서 구한 자료들이 많은데, 가장 큰 계기는 1970년 일본에서 열린 ‘오션월드’ 대회였다. 당시 우리나라 국방부 지리연구소는 IUGG 한국위원회에 가입되어 있었다. 한상복 박사는 총무 자격으로 도쿄에서 열린 회의에 참여하였다. 보통 세미나 기간 내내 참가하는 연구자들은 많지 않은데, 14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 사람은 일본 해양 연구의 대선배인 히다카 교수와 우다 교수, 그리고 한국에서 온 한상복 박사 정도였다. 해양학 권위자였던 두 교수는 젊은 한상복 박사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아 오션월드에 초청했던 것이다. 세계해양물리연합회, 기상, 해양생물 등 여러 분야가 합동으로 바다를 연구하는 대회인 오션월드에서 한상복 박사는 최신 연구는 물론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고, 연이어 CSK 심포지움에 발표자로 초청되기도 했다. 그 당시 한상복 박사의 연구는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등대에서 관측한 자료 등을 분석하고 직접 관측을 통한 장기간에 걸친 한반도 해수면 온도 변화로, 이는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초창기였던 기후변화 연구였다. 한상복 박사의 연구는 실증자료로 한반도 해수 표면 온도 상승을 증명한 것으로 인정받았고, 이를 계기로 많은 학자와 교류하며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사진 4: 벽에 걸린 사진 지도 중 가장 왼쪽이 조선전도와 중앙이 부산항 지도

사진 4: 벽에 걸린 사진 지도 중 가장 왼쪽이 조선전도와 중앙이 부산항 지도

1975년, 한상복 박사는 일본 JODC일본해양자료센터에서 회의 중 19세기에 일본에서 제작된 부산 지도 하나를 보게 된다. 당시는 한일협정이 이뤄지지 않았던 때로, 협정 없이 다른 나라의 해안을 측량하고 지도까지 제작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그 때문인지 일본 측에서는 지도 원본을 보여달라는 한 박사의 요구에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한 박사는 자신이 직접 찾겠다고 나서 통상 지도를 보관하는 캐비넷이 아닌 테이블 위 지도첩에서 부산지도 원본은 물론, 조선 침탈의 계기가 된 1875년 강화도 조약을 위한 항해에 제작된 해도(부산, 1875 해도)까지 찾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해안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한반도 근해 지도, 1905년에 일제가 만든 만주조선지도를 수집하였고, 이는 한국 해양학의 중요한 기초 자료라 판단하여 KIOST에 기증하기로 하였다. 한상복 박사가 수집한 조선전도는 강화도 조약 2년 후의 것이지만, 조선 침탈을 위한 기초 자료로서 그 준비는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침략을 위한 바닷길의 중요성이 고스란히 담긴 조선 전도는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 해양학 자료의 첫 번째 사료가 되었다.

“27일, 나는 진로를 바꾸도록 신호를 보내고 동쪽으로 향해 나갔다. 얼마 안 가서 나는 북북동쪽에 있는 섬을 보았다. 이 섬은 어떤 해도에도 없었으며 조선의 해안으로부터 20리그(111km) 정도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섬에 접근하려고 했지만 섬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있어 어려웠다. 다행히 밤사이 바람이 바뀌면서 새벽에 그 섬을 관측하기 위해 접근했다. 이 섬은 처음 목격한 천문학자 이름을 따서 ‘다즐레 섬’이라고 명명했다.”
<라페루즈의 세계 일주 항해 (Voyage de La Perouse Autour du Monde) 중>

프랑스 탐험 항해가 라페루즈가 이끄는 함대가 1787년 5월 27일 동해 해역을 지나다가 울릉도를 목격한 상황을 적은 일지이다. 이때가 정조 11년이지만 조선 해역에 나타난 라페루즈 함대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1787년 5월 프랑스의 탐험 항해가 라페루즈는 서양 최초로 한국 연해를 탐사해 울릉도를 발견하고 ‘다즐레’라는 이름을 붙인 뒤 150여 년간 서양에서 제작된 지도에 울릉도가 ‘다즐레’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함으로써 이후 서양 지도에 일본해 표기가 정착되는 단초가 되었다. 한상복 박사는 이 지도를 호주에서 유학하던 1979년 발견하였다. 한반도 영해 주변의 항해 관련 정보를 담은 이 지도를 한국 해양학의 초기 자료라 생각해 지도 2장을 구입하기 위해 당시로는 거금이었던 2천 호주 달러를 지불했다.

사진 5: 라페루즈 항해도

사진 5: 라페루즈 항해도

“주변에서는 깜짝 놀라며 너 2천 달러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 아느냐.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 만큼 중요한 지도냐 말렸지만, 그만큼 중요하다. 내가 이 지도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했죠.”
- 한상복 박사 -
KIOST에 전하는 마음

전시회에는 한상복 박사가 직접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고 발표한 연구 자료도 기증되었다.

1915년부터 시작된 부산항 표면 수온에 대한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1995년까지의 추가 관측을 통해 약 80년간에 걸친 부산항 표면 수온 변동을 조사하고 기온과 강수량과의 관계도를 분석한 ‘표면 수온 분포연구’ 자료. 이 자료를 통해 부산항에서 겨울철과 여름철 수온과 기온은 지난 80년간 약간 상승했으며, 특히 겨울철 수온 상승이 더 높았다는 걸 알아냈다. 또한, ‘고리 원전 설립을 위한 보고서’(6종) 또한 해저까지 아우르는 지형조사 자료로 이는 해양연구소에 물리 파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수집한 자료를 KIOST에 기증하며 후학들에게 진심을 담은 말을 건냈다.

사진 6: 한상복 박사의 기증 도서를 보고 있는 김웅서 원장

사진 6: 한상복 박사의 기증 도서를 보고 있는 김웅서 원장

“바다는 지구상의 우라늄까지 포함하여 모든 원소를 다 녹이는 아량을 가지고 있어요. 후배들도 이런 바다를 본받아 느긋한 여유와 넓은 아량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해양을 연구하는 곳이니 해양과학기술원만이 할 수 있는 커다란 주제를 연속적으로 연구하기를 바랍니다. 서해에 이어도 기지 등 해양관측기지가 있는데, 이런 사업이야말로 KIOST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연구가 아닐까 합니다. 서해 주변에 여러 나라가 있지만, 서해를 연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그 정보를 이용하여 다른 나라들이 공동연구를 원한다면 언제든 환영하고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북한이 공동연구에 응하지 않아 한반도 해양에 대한 연구도 반 쪽짜리 밖에 안 됩니다. 정치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전 세계 바다가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고 큰 아량과 포용성을 갖고 연구원만이 할 수 있는 연구를 개발하고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 한상복 박사 -
KIOST에 전하는 마음

한상복 박사가 기증 의사를 밝힐 때, KIOST 해양학술정보실에서는 매년 연구원을 대상으로 원내에서 테마 전시회를 준비하는데, 한상복 박사의 기증 목록을 보니 귀중한 자료들이 많아 연구원들에게 귀감이 될거라 생각해 전시회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내 연구자들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한 박사가 기증한 도서만 모아 따로 서고에 섹션도 만들어 놓았다.

사진 7: 전시회를 준비한 해양학술정보실 직원들이 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찬재, 전미영, 조정현)

사진 7: 전시회를 준비한 해양학술정보실 직원들이 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찬재, 전미영, 조정현)

“전시회를 둘러본 연구원님들이 말해주시더라고요. 예전에는 자료 얻는 게 힘들었을 텐데 이러한 고문서부터 방대한 자료를 모은 걸 보니, 지금 좋은 시대에 연구하고 있구나. 감사하다고 느낀다고요.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원님들은 영감을 받아 열심히 해야겠다고도 하셨어요.”

한평생 어렵사리 모은 자료를 후학을 위해 흔쾌히 기증한 한상복 박사. 앞으로 KIOST의 연구원들이 한상복 박사의 기증자료로 영감을 받아 어떤 연구 결과를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 본 기사는 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켜 안전하게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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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